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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4. 22. 00:45 가볍게 커피 한 잔




Sentimental Scenery의 신보 「Soundscape」


쩌다보니 회사에서 DJ(읭?)역할을 맡다보니 늘 새롭고 신선한 음악을 찾게 된다.
회사에서 BGM으로 깔아놓을 음악으로 선정되려면 조금쯤 섬세한 기준을 거쳐야 한다.

1. 너무 시끄럽거나 하면 안된다. 다시 말해 하드록 같은 건 좀 그렇다.
    싫어한다기 보다는 일에 집중이 안되므로.
2. 너무 우울하거나 몽환적이면 안된다.
   ...대표님이 안좋아하신다.
3. 늘 듣던 것은 별로다. 안된다까지는 아니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 지겹고,
   업종이 업종이다 보니 새로운 아티스트를 만나보고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대중적인 것은 왠지 싫은 반골 기질에다가,
발라드를 싫어하는 취향 때문에 보통은 인디 음악 쪽으로 선곡을 하게 된다.
지난 겨울까지만 하더라도 소란, 10cm 같은 잘나가는 인디 밴드들의 노래가 주를 이루었다면
최근에는 일렉트로니카 쪽으로 많이 선곡하는 편이다.
지난 겨울에는 다른 사람이 DJ를 했는데 그 분과 필자의 취향은 조금 달랐다.
사실 소란, 10cm. 나도 좋아한다.
하지만 그들의 맛깔나는 음악을 몇시간 동안 반복 청취하다보면... 결국 질리게 된다.
반면 일렉트로니카은 반복되는 비트에 자연스럽게 '중독'이 되고
일반적인 모던록에 비해 담백하고 깔끔한 느낌이다.
자극적인 음식은 처음 먹을 때는 맛있지만 오래 먹을 수는 없다.
반면에 담백하고 싱거운 음식은 처음에는 별로더라도 오래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이것과 비슷한 원리 아닐까?

위의 꾸리한 사정을 제쳐놓더라도, 필자는 원래부터 일렉트로니카을 좋아했었다.
방에 틀어박혀 생각에 잠기고 음악이나 흥얼거리는 것이 청소년기의 대부분이었던 관계로,
캐스커의 「철갑혹성」이나 전자양의 「Day is far too long」과 같은,
필자의 주변 사람들이 볼 때에는 괴상하기 짝이 없는 걸 듣고 있었다.
덕분에 스스로 '내 취향은 정말 괴상하기 짝이 없군'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지만
최근 읽게 된 <주머니 속의 대중음악>(윤호준 저, 바람의 아이들)에는 두 앨범이 모두 수록되어 있었고
비로소 '아, 내 취향은 대중적이지 않을지는 몰라도 또라이는 아니다. 아니, 오히려 꽤 괜찮다!'라는
자화자찬적 결론을 얻게 되었다.

...얘기가 쓸데 없이 길어지는데, 지금에라도 정확히 밝혀두지만 이건 리뷰가 아니다.
카테고리도 그냥 '가볍게 커피 한 잔' 아닌가.

뭐든 그렇듯이 생각만 하다가 막상 쓰려고 하니 참 힘든데,
이번 앨범에 대한 느낌을 말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보통 일렉트로니카을 들으면 사람의 목소리를 인공적으로 변형시킨 독특한 사운드,
뿅뿅 거리는 사운드를 통해 외계 행성이나 11차원으로 와버린 듯한 착각,
무한반복하다보면 약물에 취한듯 멍해지는 반복적인 비트 등을 기대하곤 했다.
그런데 본 앨범은 그 이상의 청명하고 맑은 느낌, 심지어 자연에 가까운 느낌을 받게 되었다.
앨범의 제목도 그렇고, 수록곡들의 제목에서도 그렇다.
이루마의 연주곡 보다도 깨끗함이나 순수함과 같은 서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하면 과장일까.
어찌 이루마를 흠잡을 수 있겠냐마는,
어쩌면 요즈음의 감성이라는 것이 소위 '전자적'이라는 것과 떼어놓을 수 없기 때문 아닐까.





흠..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본 앨범의 타이틀 곡 Brand New Life의 공식 뮤비 감상.
필자가 또 좋아라하는 미디어 아트의 세계로 퐁당. 그야말로 신세계에 갔다온 느낌이다.
그리고 이 신세계의 노래는 당신에게 속삭인다.
현실로부터 벗어나지 말라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그리고 살아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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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말자_
2011. 3. 7. 13:57 지나가다 들른 곳
 

  두리반을 처음 듣게 된 것은 지난 11월, 청어람 아카데미에서의 2030 프로젝트 "앙팡떼리블"에서였다. 청년문제를 다룬 7주간의 강의 중 단편선이라는 문학적인 이름을 가진 청년이 강사로 초청되었다. 그는 자유분방한 스타일의 소유자로, 두리반과 자립음악생산자모임에 대해 강한 열의를 보이며 얘기해주었다. 아무튼 내가 갖고 있던 두리반의 인상은 그런 것이었다. (간단히 말해 신선하고 좋은 인상.)
  그 후 두리반에 처음 방문하겠다고 마음 먹게 된 것은 순전히 그날 다른 약속이 근처에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 분을 만나고 나서 홍대에 가서 저녁을 먹고 두리반에 가면.. 딱이야!' 그야말로 지나가다 들른 곳이구나.. 그런데 하필이면 이날이 또 자립음악회 1주년이 되는 날이란다. 이런 기막히 우연이. 나는 아주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홍대입구역으로 향했다.
  홍대입구역 8번 출구로 나와 직진, 롯데시네마를 지나면 나오는 허름하고 쓸쓸한 건물, 두리반.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니 담배를 피우며 오붓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다. 오늘 공연하는 거 맞냐고 물으니 3층이 공연장이라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공연장에 들어서니 백열등 하나와 석유램프가 위태롭게 내부를 밝히고 있다. 이곳이 농성중이라는 현실이 짠하게 다가오면서도 아늑함과 친밀함도 동시에 느껴졌다.
이것은 좋은 공연이다
  두리반은 허름하고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공연장소이다. 석유램프 하나로는 3층 공연장 전체를 데울 수 없었다. 의자도 불편한 플라스틱 의자들. 공연 중에 점점 관객들이 늘어나자 두리반 상근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의자를 더 놓았다. 결코 고급 공연장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 공연이 좋은 공연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공연장으로 가는 길은 쓸쓸하고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좁고 가파르다. 그 곳에서 펼쳐지는 어둑한 공연장에 앉는 순간 나는 예술인들의 아지트에 잡입한 느낌에 사로잡혔고, 이런 회합(?)에 참여할 수 있음이 설레였다. 단편선은 청어람 아카데미 강의에서 "도와주겠다는 마음으로 노동자들에게 다가가면 안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두리반 활동에 대해서도 그 스스로가 두리반 사태를 돕는 것이 아니라 협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협력을 통해 두리반은 농성을 계속할 수 있는 힘과 홍보효과를 얻고, 뮤지션들은 공연장소와 관객들을 얻는다. 이런 건강한 발상에 더하여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 좋은 공연을 볼 수 있는데다가 두리반 농성에 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서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우리나라 곳곳에서 일어나는,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농성에 대해 접해보았지만 그것이 나의 개인적인 견해와 일치하는 일들이라 해도 직접 참여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공연을 보러 온다는 덜 부담스러운 행위를 통해 나의
사회정치적인 견해에 합하는 일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은 일반적인 공연을 보러가는 것 이상의 보람을 준다.
  나는 이날 공연 중간에 유채림 작가님의 자립음악회 1주년에 대한 감회를 듣고, 단순히 글로 접할 때보다 깊은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이라는 사막에서 살기 위해서 두리반이라는 작은 우물을 팠는데, 백개, 아니 천개가 넘는 우물을 가진 사람들이 와서 이 우물을 빼앗으려하고 있다고. 그렇다면 다른 곳에서 우물을 팔 수 있게 해주면 될텐데, 전혀 그에 못미치는 보상을 해주겠다고 말하고 있다고. 그 돈을 받고 나가도 말라죽을 것이 뻔하기에 이 우물을 지키려고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나의 마음은 두리반의 농성에 완전히 동참하게 되었다. 음악이 아니었다면 두리반에 찾아오지 않았을 나같은 사람들도 이 자립음악회 덕분에 찾아오고 만나고 소통할 수 있다.
  사실 특별한 기대없이 찾아간 공연이었는데... 이날 사막의 우물 두리반 자립음악회는 약간 울적했던 내 마음을 위로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공연이 사회참여와 다양한 계층 간의 소통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직접 체험하게 해주었다.

 
posted by 말자_
2011. 3. 6. 21:28 가볍게 커피 한 잔
  어딜 가나 이슈 메이커였던 레이디 가가는 신곡 Born This Way와 그녀의 그야말로 '핫'한 콘서트 퍼포먼스 - 알에서 나오는, 다시말하여 정말로 다시 태어나는 - 그리고 파격적인 뮤직비디오 등으로 전세계에 신선한 당혹감을 꾸준히 던져주고 있다. 그녀의 열성 팬을 지칭하는 little monster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그녀의 거침없는 행보와 도전정신에 늘 마음 속으로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또한 왕성한 음악 활동 외에도, 그녀 스스로 자신을 '그 어떤 인간에 대해서도 편견 없는 종류의 인간'이라고 지칭했을 정도로 에이즈 퇴치 등 인권 신장 활동에도 열의를 다 하는 그녀의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본 Born This Way의 뮤직비디오는 내게 한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었다. Born This Way의 가사는 단순하다. 네가 누구이든, 누구를 사랑하든지 너는 그렇게 태어난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녀가 종종 말하곤 하는 자기애에 기초한 노래이기도 하다. 그런데 노래 가사 중에는 이런 말도 있다.
I'm beautiful in my way / 'cause God makes no mistakes / 
I'm on the right track baby / I was born this way /
   한 지인은 이걸 보고, "어, 레이디 가가 기독교인이야?"라고 묻기도 했다. 글쎄, 아마 아닐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그녀의 음악적인 재능이나 사회적 행보, 혹은 종교적 성향에 대해서 논하고자 하는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다. 그저 그녀가 이번 신곡에서 너무나도 따뜻하면서도 당당하게 평범한 진리를 말해준 것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이 말을 선생님으로부터, 부모님으로부터 오늘날의 청년들이 들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말을 설교시간에 들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유감스럽다.
  온갖 스캔들을 몰고 다니는 'mother monster' 레이디 가가, 그녀가 나를 위로한다.

posted by 말자_
2011. 2. 27. 23:20 가볍게 커피 한 잔
소셜크리에이티브트위터와페이스북은잊어라
카테고리 경제/경영 > 마케팅/세일즈 > 마케팅이론 > 인터넷마케팅
지은이 황성욱 (마젤란, 2010년)
상세보기

  간만에 내 눈을 동그랗게ㅇ_ㅇ 뜨게 해준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제목인 <소셜 크리에이티브>보다도 부제인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잊어라'가 더 눈에 들어왔기에 집어들었다. 남들보다 늘 한 발 늦는-_- 나로서는 이제사 SNS에 관심을 가지며 "나도 한 번 스마트폰을 사볼까..."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까이꺼 집어치라는 책이 나왔으니 놀랄 수 밖에.
  저자는 작금의 SNS 열풍이라는 표면적인 현상에 사로잡혀 무턱대고 트윗을 날리고 RT이벤트를 만드는 마케팅 수법에 찬물을 끼얹는다. 개인적으로도 RT이벤트가 마케터 입장에서나 참여하는 사람 입장에서나 참 편리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막상 해보니 거참... 뭐랄까.. 썩 나쁘다고도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마냥 좋다고만 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일단 나도 사람들의 RT를 유도하는 사람이었지만, 누군가 RT 이벤트에 참여해서 내 타임라인을 어지럽히는 게 짜증스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그 RT가 유유히 밀려나감과 함께 (다행히) 짜증도 금새 사라지기는 했다. 하지만 RT 이벤트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상품과 브랜드를 알리는 것이 목적이라면 이건 뭔가 문제가 있지 않을까?
  사실 짜증나는 것은 RT 뿐 아니다. (자꾸 짜증이라는 말을 써서 미안한데, 난 원래 짜증을 잘 낸다.) 강남역 거리에 가득한 간판과 홍보물들. 좌석버스 안에도 광고영상을 반복해서 틀어주는 작은 TV가 있는데 최근에는 강남역에 아예 대형 TV가 설치되서 안그래도 멍청한 나를 더욱 멍청하게 만들고 있다. 다시 말해 광고의 홍수, 공해 수준의 광고 공세 속에 살고 있는 것이 바로 현대인들이다. 그래서 그 광고에 효과가 있느냐고? 글쎄.. 아예 안하는 것보단 낫겠지만 솔직히 난, 짜증이 난다고!!!
  ..다행히 나처럼 짜증난 게 나뿐은 아닌 듯, 저자도 나와 같이 짜증을 내고 있다. 만나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저자는  SNS를 다른 홍보매체들과 같은 방식으로 활용하는 마케팅을 지적하면서, SNS의 진정한 의미는 인간관계의 가시화라고 얘기한다. 가시화된 인간관계. 무슨 말이냐? 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나의 친구, 친구의 친구, 친구의 애인을 알 수 있고 관심그룹(혹은 당)을 통해 내 관심사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게 마케팅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는 책을 사서 보면 될 일이다. 아무튼 핵심은 다 썼으니까. 저자가 주장하는 바를 뒷바침하기 위해 뇌의학 용어를 가져다 사용하고 있는데, 틀린 이야기는 없으나 약간 부족한 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마케팅과 인간관계에 대한 책이니 만큼 뇌의학이라는 용어보다는 신경심리학이라는 용어가 더 적절했을 것이다. 그리고 사회심리학과 집단심리학에 대한 배경지식을 갖추고 있었다면 보다 풍성한 교양서적이 되었겠지만,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유익한 내용과 풍성한 사례, 그리고 읽기 쉬운 문체로 이루어진 좋은 실용서적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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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말자_
2011. 2. 27. 22:49 두서없는 만남

  연극인이면서 최근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이사장직을 맡게된 박정자 선생님의 연극인생에 대해 들을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앞선 시간에 만났던 이종덕 사장과는 조금(실은 확연히!) 다른 느낌의 분이었고 또 강의 진행도 그랬다.
  개인적으로 박정자 선생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연극계에서 큰 어른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정도였다. 그나마 예전에 <19 그리고 80>을 하실 때 신문기사가 난 것을 보고 인터넷으로 찾아봤던 기억이 났다. 그 연극에서 80세의 할머니 '모드' 역을 하면서 머리를 탈색해야하는 것에 대해 "뭐 어때, 머리결이 망가지면 다 밀어버리면 되지"라고 답변하신 걸 보고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그 후에 <19 그리고 80>을 보러 갈 기회는 없었지만, 극의 내용도 참신했고 무엇보다 박정자라는 여배우를 기억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 박정자가 내 눈 앞에서 강의를 하다니...! 사뭇 감동적인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려 한시간이나 강의에 늦어버렸다.(바보인증) 하하.. 우리 집이 대학로에서 멀다는 사실을 핑계거리로 슬며시 내밀어보지만.. 1부가 거의 끝날 때 즈음 도착한 나는 중간에 제공되는 값비싼 간식과 음료를 입 속으로 밀어넣고 - 꼭두까페의 최고급 샌드위치와 케이크였다 - 다소 무거운 배를 안고 2부부터 참석했다. 1시간 동안의 긴 소개에도 미처 끝낼 수 없었던 선생님의 오랜 연극인생 이야기가 이어졌다.
  여기에서 박정자 선생님의 필모그래피를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보다도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배우 박정자, 여자 박정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녀는 할머니, 혹은 원로배우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웠고, 활력에 넘쳤다. 그녀가 원하는, 그리고 나 역시도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표현에 의하면 그녀는 정녕 '섹시하다.' 검은 드레스를 맵시있게 차려입은 그녀의 모습도 멋졌지만 -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 아쉽다 - 그녀의 외모에 한정된 표현이 아님을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세월이 지나도 여전한 연극에 대한 열정,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 연극인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은 그녀를 '모드'보다 더 섹시한 할머니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예술가, 바로 내가 사랑해서 홀딱 빠지는 부류의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문화예술경영인이란 바로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일한다.
  박정자 선생님의 강의를 통해 깨닫게 된 바를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하자면, 첫째로는 예술가들에 대한 정당한 수준의 복지체계를 확립해야한다는 것이다. 최근 지병으로 세상을 뜬 모 작가의 이야기를 굳이 들먹이지 않는다하더라도, 우리나라 예술인들에 대한 대우가 어떠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박정자 선생님은 "연극배우는 회사에 소속되지도 않고 월급도 일정치않아 직업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신용카드 발급도 안되더라"면서 "취직 상태인 남편 명의로 발급받을 수 있다고 했지만 나는 평생 박정자라는 이름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거절했다고 한다. 물론 신용카드사의 조치도 아주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예술가들의 수입은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국가차원에서 어느정도까지 예술가들의 생계를 보장해주어야 할지는 신중하게 논의되어야 할 사항이다. 그러나 최소한 재능있는 인재들이 생계 때문에 예술을 포기하거나, 재능을 발휘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면 이는 국가적인 손실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배경이 받쳐주거나 매우 특출난 재능을 지닌 사람들만을 도와주는 것은 국가가 할 일로서는 충분치 않다. 오히려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신인을 발굴 및 지원하며 참신한 시도들을 지원하는 투자를 감행해야한다. ...물론 이런 부분을 전혀 하지 않고있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영역일 것이다.
  강의의 두번째 요점은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문화예술을 접할 기회를 확장해야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너무나도 공감하는 부분이다. 나도 어릴 때 보았던 발레극 호두까기인형을 비롯한 인형극, 뮤지컬을 잊지 못한다. 그런데 내가 대학에 들어가서 놀랐던 것 한 가지는, 어떤 학생들은 (특히 남자들의 경우) 이제까지 한 번도 뮤지컬, 연극과 같은 공연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경제적인 문제이든 사회분위기, 혹은 가정의 문제이든 간에, 한 번도 공연을 접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내겐 정말 충격적이었다. 이는 수도권에서 살아온 나의 편협한 경험에서 기초한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어디에 살든지 원한다면 문화생활을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것도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어린아이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한 번도 연극을 보지 못한 사람이 연극 배우를 꿈꿀 수 있는가?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공연 기회 -이는 '아동극'을 지칭하지 않는다 - 가 더 많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고, 그들이 직접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공연을 만들 수 있는 기회 역시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이 부분은 최근 아시테지 페스티벌 이후에도 제기되었던 문제인 것 같지만, 여기에서는 이 이상 다루지 않겠다.)
  위의 두 가지 사항는 약자보호와 미래에 대한 투자로서, 개인적인 이득과도 관련이 없고 그렇다고 해서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때문에 이를 위해 발벗고 나서는 사람도 상대적으로 적은 실정이다. 박정자 선생님은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것이 바로 연극이고, 자신을 연극과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다면서, 이제까지 연극으로부터 받은 것을 조금이나마 갚는 심정으로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이사장 일을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이에 동의하는 어른들과 나 같은 어린아이(!)들이 많아지기를 바라고, 나 또한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으면 한다.

 
posted by 말자_
2011. 2. 23. 16:07 두서없는 만남
  느닷없이 비어버린 일주일의 시간을 어떻게하면 알차게 보낼까 고민하던 중에 때마침 예술경영아카데미에서 주최하는 <3인 3색: 우리시대의 리더를 말하다>라는 강의에 대한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문화기획에 있어서 전혀 아는 것도 없는 주제에 해보겠다고 나대는 나로서는 놓칠 수 없는 기회였기에 당장 신청했다.
  웃기는 얘기지만, 나에게는 성공하고 이미 무언가를 이룬 사람들에 대한 비죽거림이 있다. 그건 아마도 우리 사회의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 중 일부의 몰상식한 행태와 무엇보다도 나 자신의 열등감 때문일 터였다. 이번 강의에 임할 때에는 다행히 그런 마음이 강하게 들지는 않았지만, 국내 유수의 문화기관의 사장과 이사장을 역임한 이력과 칭호가 내게는 부담스럽게 느껴졌었다.
  강의의 첫 순서는 '사진을 통해 만나보는 이종덕'이었다. 돌을 맞았던 시절의 사진부터 학창시절을 거쳐 국내 문화계의 거장으로 활동하는 사진을 슬라이드로 넘겨보면서 이종덕 사장의 생애를 간단히 짚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진을 보면서 설명을 들으니 이해도 쉬웠고 전체적인 인생을 조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순서였다. 무엇보다 지금은 한국 문화계의 살아있는 전설이 된 이종덕 사장이 초창기에 문화공보부의 공무원으로 일할 때부터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을 거쳐 88서울예술단 단장, 예술의 전당 사장, 세종문화회관 사장을 역임하고 오늘날 충무아트홀 사장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특혜나 우대를 받은 사람이 밟아온 과정이 아닌 문화 예술에 대한 꾸준한 애정과 열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는 언제건, 누구건, '도울 수 있는 만큼 도우라'고 말한다. 공무원이었지만, 단순히 자신의 생계 유지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인들을 향한 애정으로 일했음이 느껴졌다. 또한 예술경영가, 문화기획자들은 무대 위에서 드러나는 사람이 아니라 무대 뒤에서 아티스트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겸손한 자세와 마음가짐을 강조했다. 이종덕 사장 스스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라고 칭하는 군사정권 시절, 누구도 예술인들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고 합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던 시절에 예술에 대한 사랑과 예술가들에 대한 순수한 마음으로 일해온 그가 있었기에 오늘날 이만큼 우리나라의 문화예술계가 성장할 수 있었다고 느꼈다.
  이종덕 사장에게서 느낀 또다른 느낌은, 그는 직책이나 호칭에 연연하지 않고 늘 일하는 사람이었고, 그가 하는 일이란 예술가들을 돕는 것 뿐 아니라 소비자들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예술의 전당 사장으로 역임하면서 그가 한 개혁은 어떻게 보면 작은 것들이었다. 입구부터 관람객들이 공연정보나 위치를 잘 알 수 있도록 재정비했고, 처음 마주하는 경비원들과 청소요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친절하게 대할 수 있도록 했다. 울퉁불퉁한 통로에 여성 관객들의 구두 굽이 끼거나 부러지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바로 길을 고쳤다. 이 모든 배려들은 사소해보여서 자칫 지나치기 쉬운 것들이지만, 방문객의 입장에서는 감동을 주는 배려였음에 틀림없다.
  '방문하는 사람이 고급스러워지는 느낌이 들게 하라' 문화컨텐츠의 고급화를 강조하면서 이종덕 사장이 한 말이다. 소비자는 문화 컨텐츠 그 자체를 구매할 뿐만 아니라 공연되는 장소의 분위기, 그리고 소비하면서 형성되는 자신의 이미지까지도 원한다는 것이다.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부담스러워하는 나로서는 활기찬 대학로의 분위기 - 연극 한 편 보고 막걸리도 한 잔 걸치는 그런 분위기 - 와 개성넘치는 홍대의 분위기를 더 좋아하지만, 문화컨텐츠 자체의 내적인 기획 뿐만 아니라 외적인 요소들과 분위기와 이미지도 동시에 고려하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각 영역별로 주요 타킷층이 원하는 방향이 있을 것이고 문화기획자라면 그것을 잘 활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이종덕 사장이 의도했던 바는 아니었으나, 국내의 유수의 기관에서 일하다보니 정말 '큰'일들에 대해서만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문화예술경영의 큰 어른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지역자치로 운영되는 문화기관이나 인디밴드들과 실험예술을 지원하는 단체 및 공간들에 걸맞은 작은 이야기도 듣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3시간의 강의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종덕 사장의 무뚝뚝한 표정 뒤에 예술과 사람에 대한 따스한 애정이 있음을 제대로 알 수 있었고, 결국 문화예술경영이란 사람에 대한, 삶에 대한, 예술에 대한 사랑의 행위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내게도 그만큼의 마음과, 또 그에 걸맞은 실력과 지혜가 있기를 꿈꾸게 되었다.


2011. 2. 21.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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