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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반'에 해당되는 글 1

  1. 2011.03.07 사막의 우물 두리반 자립음악회, 벌써 1년
2011. 3. 7. 13:57 지나가다 들른 곳
 

  두리반을 처음 듣게 된 것은 지난 11월, 청어람 아카데미에서의 2030 프로젝트 "앙팡떼리블"에서였다. 청년문제를 다룬 7주간의 강의 중 단편선이라는 문학적인 이름을 가진 청년이 강사로 초청되었다. 그는 자유분방한 스타일의 소유자로, 두리반과 자립음악생산자모임에 대해 강한 열의를 보이며 얘기해주었다. 아무튼 내가 갖고 있던 두리반의 인상은 그런 것이었다. (간단히 말해 신선하고 좋은 인상.)
  그 후 두리반에 처음 방문하겠다고 마음 먹게 된 것은 순전히 그날 다른 약속이 근처에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 분을 만나고 나서 홍대에 가서 저녁을 먹고 두리반에 가면.. 딱이야!' 그야말로 지나가다 들른 곳이구나.. 그런데 하필이면 이날이 또 자립음악회 1주년이 되는 날이란다. 이런 기막히 우연이. 나는 아주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홍대입구역으로 향했다.
  홍대입구역 8번 출구로 나와 직진, 롯데시네마를 지나면 나오는 허름하고 쓸쓸한 건물, 두리반.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니 담배를 피우며 오붓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다. 오늘 공연하는 거 맞냐고 물으니 3층이 공연장이라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공연장에 들어서니 백열등 하나와 석유램프가 위태롭게 내부를 밝히고 있다. 이곳이 농성중이라는 현실이 짠하게 다가오면서도 아늑함과 친밀함도 동시에 느껴졌다.
이것은 좋은 공연이다
  두리반은 허름하고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공연장소이다. 석유램프 하나로는 3층 공연장 전체를 데울 수 없었다. 의자도 불편한 플라스틱 의자들. 공연 중에 점점 관객들이 늘어나자 두리반 상근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의자를 더 놓았다. 결코 고급 공연장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 공연이 좋은 공연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공연장으로 가는 길은 쓸쓸하고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좁고 가파르다. 그 곳에서 펼쳐지는 어둑한 공연장에 앉는 순간 나는 예술인들의 아지트에 잡입한 느낌에 사로잡혔고, 이런 회합(?)에 참여할 수 있음이 설레였다. 단편선은 청어람 아카데미 강의에서 "도와주겠다는 마음으로 노동자들에게 다가가면 안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두리반 활동에 대해서도 그 스스로가 두리반 사태를 돕는 것이 아니라 협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협력을 통해 두리반은 농성을 계속할 수 있는 힘과 홍보효과를 얻고, 뮤지션들은 공연장소와 관객들을 얻는다. 이런 건강한 발상에 더하여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 좋은 공연을 볼 수 있는데다가 두리반 농성에 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서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우리나라 곳곳에서 일어나는,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농성에 대해 접해보았지만 그것이 나의 개인적인 견해와 일치하는 일들이라 해도 직접 참여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공연을 보러 온다는 덜 부담스러운 행위를 통해 나의
사회정치적인 견해에 합하는 일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은 일반적인 공연을 보러가는 것 이상의 보람을 준다.
  나는 이날 공연 중간에 유채림 작가님의 자립음악회 1주년에 대한 감회를 듣고, 단순히 글로 접할 때보다 깊은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이라는 사막에서 살기 위해서 두리반이라는 작은 우물을 팠는데, 백개, 아니 천개가 넘는 우물을 가진 사람들이 와서 이 우물을 빼앗으려하고 있다고. 그렇다면 다른 곳에서 우물을 팔 수 있게 해주면 될텐데, 전혀 그에 못미치는 보상을 해주겠다고 말하고 있다고. 그 돈을 받고 나가도 말라죽을 것이 뻔하기에 이 우물을 지키려고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나의 마음은 두리반의 농성에 완전히 동참하게 되었다. 음악이 아니었다면 두리반에 찾아오지 않았을 나같은 사람들도 이 자립음악회 덕분에 찾아오고 만나고 소통할 수 있다.
  사실 특별한 기대없이 찾아간 공연이었는데... 이날 사막의 우물 두리반 자립음악회는 약간 울적했던 내 마음을 위로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공연이 사회참여와 다양한 계층 간의 소통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직접 체험하게 해주었다.

 
posted by 말자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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