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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2. 27. 22:49 두서없는 만남

  연극인이면서 최근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이사장직을 맡게된 박정자 선생님의 연극인생에 대해 들을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앞선 시간에 만났던 이종덕 사장과는 조금(실은 확연히!) 다른 느낌의 분이었고 또 강의 진행도 그랬다.
  개인적으로 박정자 선생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연극계에서 큰 어른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정도였다. 그나마 예전에 <19 그리고 80>을 하실 때 신문기사가 난 것을 보고 인터넷으로 찾아봤던 기억이 났다. 그 연극에서 80세의 할머니 '모드' 역을 하면서 머리를 탈색해야하는 것에 대해 "뭐 어때, 머리결이 망가지면 다 밀어버리면 되지"라고 답변하신 걸 보고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그 후에 <19 그리고 80>을 보러 갈 기회는 없었지만, 극의 내용도 참신했고 무엇보다 박정자라는 여배우를 기억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 박정자가 내 눈 앞에서 강의를 하다니...! 사뭇 감동적인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려 한시간이나 강의에 늦어버렸다.(바보인증) 하하.. 우리 집이 대학로에서 멀다는 사실을 핑계거리로 슬며시 내밀어보지만.. 1부가 거의 끝날 때 즈음 도착한 나는 중간에 제공되는 값비싼 간식과 음료를 입 속으로 밀어넣고 - 꼭두까페의 최고급 샌드위치와 케이크였다 - 다소 무거운 배를 안고 2부부터 참석했다. 1시간 동안의 긴 소개에도 미처 끝낼 수 없었던 선생님의 오랜 연극인생 이야기가 이어졌다.
  여기에서 박정자 선생님의 필모그래피를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보다도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배우 박정자, 여자 박정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녀는 할머니, 혹은 원로배우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웠고, 활력에 넘쳤다. 그녀가 원하는, 그리고 나 역시도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표현에 의하면 그녀는 정녕 '섹시하다.' 검은 드레스를 맵시있게 차려입은 그녀의 모습도 멋졌지만 -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 아쉽다 - 그녀의 외모에 한정된 표현이 아님을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세월이 지나도 여전한 연극에 대한 열정,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 연극인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은 그녀를 '모드'보다 더 섹시한 할머니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예술가, 바로 내가 사랑해서 홀딱 빠지는 부류의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문화예술경영인이란 바로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일한다.
  박정자 선생님의 강의를 통해 깨닫게 된 바를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하자면, 첫째로는 예술가들에 대한 정당한 수준의 복지체계를 확립해야한다는 것이다. 최근 지병으로 세상을 뜬 모 작가의 이야기를 굳이 들먹이지 않는다하더라도, 우리나라 예술인들에 대한 대우가 어떠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박정자 선생님은 "연극배우는 회사에 소속되지도 않고 월급도 일정치않아 직업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신용카드 발급도 안되더라"면서 "취직 상태인 남편 명의로 발급받을 수 있다고 했지만 나는 평생 박정자라는 이름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거절했다고 한다. 물론 신용카드사의 조치도 아주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예술가들의 수입은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국가차원에서 어느정도까지 예술가들의 생계를 보장해주어야 할지는 신중하게 논의되어야 할 사항이다. 그러나 최소한 재능있는 인재들이 생계 때문에 예술을 포기하거나, 재능을 발휘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면 이는 국가적인 손실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배경이 받쳐주거나 매우 특출난 재능을 지닌 사람들만을 도와주는 것은 국가가 할 일로서는 충분치 않다. 오히려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신인을 발굴 및 지원하며 참신한 시도들을 지원하는 투자를 감행해야한다. ...물론 이런 부분을 전혀 하지 않고있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영역일 것이다.
  강의의 두번째 요점은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문화예술을 접할 기회를 확장해야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너무나도 공감하는 부분이다. 나도 어릴 때 보았던 발레극 호두까기인형을 비롯한 인형극, 뮤지컬을 잊지 못한다. 그런데 내가 대학에 들어가서 놀랐던 것 한 가지는, 어떤 학생들은 (특히 남자들의 경우) 이제까지 한 번도 뮤지컬, 연극과 같은 공연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경제적인 문제이든 사회분위기, 혹은 가정의 문제이든 간에, 한 번도 공연을 접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내겐 정말 충격적이었다. 이는 수도권에서 살아온 나의 편협한 경험에서 기초한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어디에 살든지 원한다면 문화생활을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것도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어린아이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한 번도 연극을 보지 못한 사람이 연극 배우를 꿈꿀 수 있는가?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공연 기회 -이는 '아동극'을 지칭하지 않는다 - 가 더 많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고, 그들이 직접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공연을 만들 수 있는 기회 역시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이 부분은 최근 아시테지 페스티벌 이후에도 제기되었던 문제인 것 같지만, 여기에서는 이 이상 다루지 않겠다.)
  위의 두 가지 사항는 약자보호와 미래에 대한 투자로서, 개인적인 이득과도 관련이 없고 그렇다고 해서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때문에 이를 위해 발벗고 나서는 사람도 상대적으로 적은 실정이다. 박정자 선생님은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것이 바로 연극이고, 자신을 연극과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다면서, 이제까지 연극으로부터 받은 것을 조금이나마 갚는 심정으로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이사장 일을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이에 동의하는 어른들과 나 같은 어린아이(!)들이 많아지기를 바라고, 나 또한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으면 한다.

 
posted by 말자_
2011. 2. 23. 16:07 두서없는 만남
  느닷없이 비어버린 일주일의 시간을 어떻게하면 알차게 보낼까 고민하던 중에 때마침 예술경영아카데미에서 주최하는 <3인 3색: 우리시대의 리더를 말하다>라는 강의에 대한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문화기획에 있어서 전혀 아는 것도 없는 주제에 해보겠다고 나대는 나로서는 놓칠 수 없는 기회였기에 당장 신청했다.
  웃기는 얘기지만, 나에게는 성공하고 이미 무언가를 이룬 사람들에 대한 비죽거림이 있다. 그건 아마도 우리 사회의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 중 일부의 몰상식한 행태와 무엇보다도 나 자신의 열등감 때문일 터였다. 이번 강의에 임할 때에는 다행히 그런 마음이 강하게 들지는 않았지만, 국내 유수의 문화기관의 사장과 이사장을 역임한 이력과 칭호가 내게는 부담스럽게 느껴졌었다.
  강의의 첫 순서는 '사진을 통해 만나보는 이종덕'이었다. 돌을 맞았던 시절의 사진부터 학창시절을 거쳐 국내 문화계의 거장으로 활동하는 사진을 슬라이드로 넘겨보면서 이종덕 사장의 생애를 간단히 짚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진을 보면서 설명을 들으니 이해도 쉬웠고 전체적인 인생을 조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순서였다. 무엇보다 지금은 한국 문화계의 살아있는 전설이 된 이종덕 사장이 초창기에 문화공보부의 공무원으로 일할 때부터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을 거쳐 88서울예술단 단장, 예술의 전당 사장, 세종문화회관 사장을 역임하고 오늘날 충무아트홀 사장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특혜나 우대를 받은 사람이 밟아온 과정이 아닌 문화 예술에 대한 꾸준한 애정과 열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는 언제건, 누구건, '도울 수 있는 만큼 도우라'고 말한다. 공무원이었지만, 단순히 자신의 생계 유지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인들을 향한 애정으로 일했음이 느껴졌다. 또한 예술경영가, 문화기획자들은 무대 위에서 드러나는 사람이 아니라 무대 뒤에서 아티스트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겸손한 자세와 마음가짐을 강조했다. 이종덕 사장 스스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라고 칭하는 군사정권 시절, 누구도 예술인들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고 합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던 시절에 예술에 대한 사랑과 예술가들에 대한 순수한 마음으로 일해온 그가 있었기에 오늘날 이만큼 우리나라의 문화예술계가 성장할 수 있었다고 느꼈다.
  이종덕 사장에게서 느낀 또다른 느낌은, 그는 직책이나 호칭에 연연하지 않고 늘 일하는 사람이었고, 그가 하는 일이란 예술가들을 돕는 것 뿐 아니라 소비자들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예술의 전당 사장으로 역임하면서 그가 한 개혁은 어떻게 보면 작은 것들이었다. 입구부터 관람객들이 공연정보나 위치를 잘 알 수 있도록 재정비했고, 처음 마주하는 경비원들과 청소요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친절하게 대할 수 있도록 했다. 울퉁불퉁한 통로에 여성 관객들의 구두 굽이 끼거나 부러지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바로 길을 고쳤다. 이 모든 배려들은 사소해보여서 자칫 지나치기 쉬운 것들이지만, 방문객의 입장에서는 감동을 주는 배려였음에 틀림없다.
  '방문하는 사람이 고급스러워지는 느낌이 들게 하라' 문화컨텐츠의 고급화를 강조하면서 이종덕 사장이 한 말이다. 소비자는 문화 컨텐츠 그 자체를 구매할 뿐만 아니라 공연되는 장소의 분위기, 그리고 소비하면서 형성되는 자신의 이미지까지도 원한다는 것이다.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부담스러워하는 나로서는 활기찬 대학로의 분위기 - 연극 한 편 보고 막걸리도 한 잔 걸치는 그런 분위기 - 와 개성넘치는 홍대의 분위기를 더 좋아하지만, 문화컨텐츠 자체의 내적인 기획 뿐만 아니라 외적인 요소들과 분위기와 이미지도 동시에 고려하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각 영역별로 주요 타킷층이 원하는 방향이 있을 것이고 문화기획자라면 그것을 잘 활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이종덕 사장이 의도했던 바는 아니었으나, 국내의 유수의 기관에서 일하다보니 정말 '큰'일들에 대해서만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문화예술경영의 큰 어른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지역자치로 운영되는 문화기관이나 인디밴드들과 실험예술을 지원하는 단체 및 공간들에 걸맞은 작은 이야기도 듣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3시간의 강의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종덕 사장의 무뚝뚝한 표정 뒤에 예술과 사람에 대한 따스한 애정이 있음을 제대로 알 수 있었고, 결국 문화예술경영이란 사람에 대한, 삶에 대한, 예술에 대한 사랑의 행위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내게도 그만큼의 마음과, 또 그에 걸맞은 실력과 지혜가 있기를 꿈꾸게 되었다.


2011. 2. 21.
말자
posted by 말자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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