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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2. 23. 16:07 두서없는 만남
  느닷없이 비어버린 일주일의 시간을 어떻게하면 알차게 보낼까 고민하던 중에 때마침 예술경영아카데미에서 주최하는 <3인 3색: 우리시대의 리더를 말하다>라는 강의에 대한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문화기획에 있어서 전혀 아는 것도 없는 주제에 해보겠다고 나대는 나로서는 놓칠 수 없는 기회였기에 당장 신청했다.
  웃기는 얘기지만, 나에게는 성공하고 이미 무언가를 이룬 사람들에 대한 비죽거림이 있다. 그건 아마도 우리 사회의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 중 일부의 몰상식한 행태와 무엇보다도 나 자신의 열등감 때문일 터였다. 이번 강의에 임할 때에는 다행히 그런 마음이 강하게 들지는 않았지만, 국내 유수의 문화기관의 사장과 이사장을 역임한 이력과 칭호가 내게는 부담스럽게 느껴졌었다.
  강의의 첫 순서는 '사진을 통해 만나보는 이종덕'이었다. 돌을 맞았던 시절의 사진부터 학창시절을 거쳐 국내 문화계의 거장으로 활동하는 사진을 슬라이드로 넘겨보면서 이종덕 사장의 생애를 간단히 짚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진을 보면서 설명을 들으니 이해도 쉬웠고 전체적인 인생을 조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순서였다. 무엇보다 지금은 한국 문화계의 살아있는 전설이 된 이종덕 사장이 초창기에 문화공보부의 공무원으로 일할 때부터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을 거쳐 88서울예술단 단장, 예술의 전당 사장, 세종문화회관 사장을 역임하고 오늘날 충무아트홀 사장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특혜나 우대를 받은 사람이 밟아온 과정이 아닌 문화 예술에 대한 꾸준한 애정과 열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는 언제건, 누구건, '도울 수 있는 만큼 도우라'고 말한다. 공무원이었지만, 단순히 자신의 생계 유지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인들을 향한 애정으로 일했음이 느껴졌다. 또한 예술경영가, 문화기획자들은 무대 위에서 드러나는 사람이 아니라 무대 뒤에서 아티스트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겸손한 자세와 마음가짐을 강조했다. 이종덕 사장 스스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라고 칭하는 군사정권 시절, 누구도 예술인들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고 합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던 시절에 예술에 대한 사랑과 예술가들에 대한 순수한 마음으로 일해온 그가 있었기에 오늘날 이만큼 우리나라의 문화예술계가 성장할 수 있었다고 느꼈다.
  이종덕 사장에게서 느낀 또다른 느낌은, 그는 직책이나 호칭에 연연하지 않고 늘 일하는 사람이었고, 그가 하는 일이란 예술가들을 돕는 것 뿐 아니라 소비자들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예술의 전당 사장으로 역임하면서 그가 한 개혁은 어떻게 보면 작은 것들이었다. 입구부터 관람객들이 공연정보나 위치를 잘 알 수 있도록 재정비했고, 처음 마주하는 경비원들과 청소요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친절하게 대할 수 있도록 했다. 울퉁불퉁한 통로에 여성 관객들의 구두 굽이 끼거나 부러지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바로 길을 고쳤다. 이 모든 배려들은 사소해보여서 자칫 지나치기 쉬운 것들이지만, 방문객의 입장에서는 감동을 주는 배려였음에 틀림없다.
  '방문하는 사람이 고급스러워지는 느낌이 들게 하라' 문화컨텐츠의 고급화를 강조하면서 이종덕 사장이 한 말이다. 소비자는 문화 컨텐츠 그 자체를 구매할 뿐만 아니라 공연되는 장소의 분위기, 그리고 소비하면서 형성되는 자신의 이미지까지도 원한다는 것이다.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부담스러워하는 나로서는 활기찬 대학로의 분위기 - 연극 한 편 보고 막걸리도 한 잔 걸치는 그런 분위기 - 와 개성넘치는 홍대의 분위기를 더 좋아하지만, 문화컨텐츠 자체의 내적인 기획 뿐만 아니라 외적인 요소들과 분위기와 이미지도 동시에 고려하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각 영역별로 주요 타킷층이 원하는 방향이 있을 것이고 문화기획자라면 그것을 잘 활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이종덕 사장이 의도했던 바는 아니었으나, 국내의 유수의 기관에서 일하다보니 정말 '큰'일들에 대해서만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문화예술경영의 큰 어른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지역자치로 운영되는 문화기관이나 인디밴드들과 실험예술을 지원하는 단체 및 공간들에 걸맞은 작은 이야기도 듣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3시간의 강의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종덕 사장의 무뚝뚝한 표정 뒤에 예술과 사람에 대한 따스한 애정이 있음을 제대로 알 수 있었고, 결국 문화예술경영이란 사람에 대한, 삶에 대한, 예술에 대한 사랑의 행위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내게도 그만큼의 마음과, 또 그에 걸맞은 실력과 지혜가 있기를 꿈꾸게 되었다.


2011. 2. 21.
말자
posted by 말자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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